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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소리로 시작된 동네의 오후, 뻥튀기 장수의 시간 어린 시절 골목 어귀를 울리던 “뻥!” 소리,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따뜻한 손길. 뻥튀기 장수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동네의 기억이었습니다. 1. 골목의 마법, 그 “뻥!”이라는 소리 오후가 되면 동네 어귀에 낯익은 리어카가 등장합니다. 작은 수레에 거대한 금속통이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중절모를 쓴 아저씨가 커다란 쇠손잡이를 돌리고 있었죠.그 순간, 하늘을 찌르는 듯한 한 소리.“뻥!”그 소리는 단지 쌀이나 옥수수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뛰어갔고, 엄마들은 준비해둔 쌀 봉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동네의 하루가 그 ‘한 방’으로 리듬을 맞췄던 시절.뻥튀기 장수는 그 자체로 이웃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마법사 같았죠.2. 수레 하나로 떠도는 장인의 손길뻥튀기 장수는 대.. 2025. 4. 22.
여름을 짜던 손, 왕골 의자 장인의 이야기 🌾 왕골로 엮은 계절의 기억“바람이 잘 통하는 의자요? 그건 왕골 의자지요.”한여름, 시골 마당의 그늘 아래 놓여 있던 왕골 의자를 기억하시나요? 몸을 맡기면 뽀드득 소리가 나고, 등과 허벅지를 시원하게 감싸주던 촉감. 그 감각은 단순한 가구의 차원을 넘어, 계절과 생활을 엮어낸 ‘기억의 조각’이었습니다.왕골 의자 장인은 그런 감각을 한 올 한 올 손으로 짜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계도, 틀도 없이 오로지 손기술로 왕골을 엮고 틀을 맞춰 가구 하나를 완성했던 이들. 오늘은 여름의 기억을 짜던 조용한 장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 골골이 엮은 삶의 선왕골은 볏짚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물가에서 자라는 풀로, 수분을 머금고 있어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통풍이 잘 되죠. 여름에.. 2025. 4. 21.
한 자 한 자에 시간을 새기던 사람 — 필경사의 조용한 기록 “한지 위에 먹을 올리고 붓을 들면, 마음부터 가라앉았지요. 글자를 베끼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옮기는 일이었으니까요.”복사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글 한 줄을 복사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 필요했지요.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한 자 한 자를 베껴 쓰던 그 사람들. 오늘은 조용한 방에서 시대를 기록했던 사람들, 필경사(筆耕士)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 잊혀진 손글씨의 시대필경사란 말 그대로 ‘붓으로 경작하는 사람’, 즉 글을 써서 생계를 잇는 직업인이었습니다.주된 업무는 문서를 옮겨 쓰는 일. 지금의 공무원 기록 담당자, 인쇄소 복사기, 심지어 문서 디자이너의 역할까지도 이들이 도맡았죠. 특히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한동안까지도 관청, 법원, 학교, 출판사 등.. 2025. 4. 17.
실 한 가닥에 삶을 짜던 사람들 — 베틀짜기 장인의 조용한 시간 🌿 “베틀 위에 앉으면, 마음이 고요해졌어요. 무늬 하나에 사계절이 다 들어 있었으니까요.”전통 가옥의 안채, 햇살이 비치는 마루 끝자락. 그곳엔 언제나 베틀이 놓여 있었다. 실을 엮고 무늬를 짜던 손길은 느렸지만 단단했고, 그 손끝에서 이불이, 옷감이, 그리고 한 가정의 계절이 만들어졌다. 이 글은 ‘한 땀 한 땀’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장인들, 바로 베틀짜기 장인에 대한 이야기다. 🪡 집안 곳곳에서 울려 퍼지던 베틀 소리지금은 ‘전통공예’로 분류되지만, 예전에는 베짜기가 일상이었다. 특히 농번기가 끝난 겨울, 여성들은 실을 잣고 베틀 앞에 앉아 옷감과 이불감을 짰다. 면직물이나 모시, 삼베 등 지역마다 짜는 소재는 달랐지만, 그 방식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실을 걸고, 북을 넣고, 발을 굴.. 2025. 4. 15.
“작은 조각 속에 밤하늘을 새기던 사람들—자개장 세공사의 손끝에서 빛난 전통의 미학” 🌌 빛나는 조각, 사라진 손기술한밤중, 얇은 달빛처럼 반짝이던 장롱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그 장롱의 문짝 위엔 구름이 흘렀고, 학이 날았으며, 꽃이 피었다. 검은 나무판 위에 수놓인 은은한 무늬—그게 바로 자개다. 그리고 그 자개를 하나하나 정성껏 붙이고 새기던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우리는 자개장 세공사라 불렀다.자개장이란 조개껍데기의 속껍질을 얇게 가공해 목가구에 장식하는 전통 공예 기법이다. 흔히 자개장이라고 부르는 장롱, 반닫이, 문갑, 화장대 등은 모두 이 자개 세공의 결정체였다. 조각조각 빛나는 자개를 오려내고, 정교하게 붙이고, 그 위에 손으로 무늬를 새기던 자개장 세공사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안방 문화를 빛내온 장인들이었다. 🛠️ 조개껍데기를 다듬는 손, 세월을 새기는 기술세.. 2025. 4. 15.
철컥이는 리듬 속에서 단어를 짜내던 사람들, 수동타자수 “타자기의 리듬 속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수동 타자수의 손끝에는 세상이 찍혀 있었습니다.”   🖋️ 철컥이는 리듬, 수동 타자수의 하루지금의 우리는 손가락 하나로 문서를 저장하고, 키보드 몇 번이면 글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문서를 작성한다는 건 숙련된 기술과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직업이 바로 ‘수동 타자수’다. 수동 타자수는 행정, 비서, 번역, 심지어 문학의 현장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곳에서 활약했다. 종이 위를 철컥이며 지나가는 타자기의 리듬, 사각사각 움직이는 종이 롤, 리본 잉크 냄새는 그들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이었다. 하루 종일 앉은 자리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는 작업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정.. 2025.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