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골로 엮은 계절의 기억
“바람이 잘 통하는 의자요? 그건 왕골 의자지요.”
한여름, 시골 마당의 그늘 아래 놓여 있던 왕골 의자를 기억하시나요? 몸을 맡기면 뽀드득 소리가 나고, 등과 허벅지를 시원하게 감싸주던 촉감. 그 감각은 단순한 가구의 차원을 넘어, 계절과 생활을 엮어낸 ‘기억의 조각’이었습니다.
왕골 의자 장인은 그런 감각을 한 올 한 올 손으로 짜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계도, 틀도 없이 오로지 손기술로 왕골을 엮고 틀을 맞춰 가구 하나를 완성했던 이들. 오늘은 여름의 기억을 짜던 조용한 장인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 골골이 엮은 삶의 선
왕골은 볏짚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물가에서 자라는 풀로, 수분을 머금고 있어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통풍이 잘 되죠. 여름에 앉아 있어도 덥지 않고, 엉덩이가 닿는 면마다 시원한 감촉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왕골은 매트, 방석, 자리, 그리고 특히 의자 시트용으로 널리 쓰였어요.
왕골 의자 장인의 일은 단순한 짜깁기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물가나 논두렁에서 왕골을 직접 베고, 햇볕에 말린 후 적당한 수분을 유지한 상태로 다듬어야 했습니다. 그 후 나무 틀 위에 앉아, 실처럼 얇은 왕골을 손으로 땋아가며 한 가닥씩 엮어 의자 좌판을 완성하죠. 등받이와 엉덩이 받침 부분을 왕골로 촘촘히 엮는 데에는 최소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 왕골 의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왕골 의자 제작은 보통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틀을 만들고, 어머니나 할머니가 왕골을 짰습니다. 아이들은 왕골 다듬기를 도왔고요. 서로의 손이 없으면 하루 일도 마치기 어려운 일, 바로 ‘공동의 손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죠.
이들의 작업장은 대부분 시골 마당이나 마루였습니다. 특별한 공방이 없어도, 햇살이 좋은 날이면 왕골이 널려 있었고, 땀을 닦아가며 엮던 장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풍경이었죠.
이 의자는 주로 여름을 위한 계절 가구였기 때문에, 봄이 되면 주문이 몰렸고 가을이면 잠시 쉬는 계절 일이었습니다. 어떤 장인에게는 여름 한 철 장사였고, 어떤 이에게는 평생 생계를 이어준 소중한 일이었죠.
🌀 산업화의 물결, 그리고 사라진 손
왕골 의자 장인의 일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플라스틱 의자의 등장이었죠. 가볍고 값싸며 대량 생산이 가능한 플라스틱은,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엮는 왕골 의자를 빠르게 대체했습니다.
게다가 생활 환경이 변화하면서, 통풍보다는 쿠션감과 실내 인테리어가 중시되기 시작했어요. 시골에서도 이제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왕골 의자 대신 소파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왕골을 엮던 사람들의 일은 줄어들었고, 기술을 전수받을 사람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부 공예가나 전통 장인이 왕골을 사용한 제품을 제작하고 있지만, 이는 예전처럼 생활에 밀접한 가구가 아닌, 장식적이거나 체험용 공예품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 사라진 것이 아닌, 사라져 가는 중
왕골 의자 장인의 손기술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통 공예 체험장에서 왕골 방석을 만들어보거나, 박물관에 전시된 왕골 가구를 보며 그 기억을 되살리는 일도 가능하죠.
또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 단위로 왕골 짜기를 계승하는 분들이 계셔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술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세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기록으로 남겨야 할 장인정신이 되어버린 셈이죠.
왕골 의자 장인은 단순히 가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계절을 짜던 이들이었습니다. 손끝의 기술로 일상에 편안함을 더하고, 자연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가구를 만들었던 이 장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단순한 향수가 아닌 생활 속 장인정신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지금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그 의자 위에 남아 있는 왕골의 결 하나하나엔 시간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이 손이 짜낸 여름을 기억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