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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배달부의 겨울, 검댕 속 따뜻했던 기억

by shimsseul 2025. 4. 7.

 

연탄배달부라는 직업을 통해, 과거 한국의 겨울 풍경과 함께 사람들의 온기를 전했던 아날로그 노동의 가치를 되새겨봅니다.

 

 

연탄
연탄


🔹 골목길을 누비던 까만 그림자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시절, 골목에는 까만 그림자가 하나둘씩 지나갔습니다. 검은 얼굴, 새까만 손, 어깨 위에 얹힌 무거운 연탄 두 장. 그는 연탄배달부였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수백 개의 연탄을 등에 지고 수많은 골목을 누볐던 이들. 지금은 도시가스와 전기보일러가 일상이 되었지만, 한때 연탄은 ‘따뜻함의 상징’이자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사람들이 바로 연탄배달부였죠.


🔹 따뜻함 뒤의 무거운 노동

연탄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는 하루를 지탱해주는 힘이었고, 할머니의 솥단지 밑에서는 국물이 끓어오르던 온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따뜻함 뒤에는 무거운 노동이 있었습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평균 3.5kg, 하루에 300장 이상을 나르는 경우도 많았죠. 배달하는 길이 험하거나 언덕이 많으면 더 많은 시간과 체력을 써야 했습니다. 눈이 오면 미끄럽고, 비가 오면 진흙탕 속을 걸어야 했습니다. 어떤 배달부는 손이 동상에 걸려도 하루를 쉴 수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들의 겨울은 그렇게 검디검은 땀과 함께 흘러갔습니다.


🔹 연탄보다 따뜻했던 마음

서울 성북구 정릉에 살던 김영수 씨는 1970년대 후반부터 20년 가까이 연탄을 배달했습니다. “어린애가 감기 걸렸다고 하면 그 집엔 꼭 먼저 갖다줬지. 이 집은 내일 떨어지겠구나, 그럼 눈 오기 전에 미리 넣어야지. 그런 식으로 다 외우고 다녔어.” 그는 어느 날 한 어르신이 미안하다며 삶은 달걀 하나를 건네주셨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거 하나로 하루 피로가 싹 풀렸어. 지금은 그런 정이 어딨어.” 김 씨처럼, 연탄배달부들은 단순히 연탄을 옮긴 것이 아니라 이웃의 삶을 함께 나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기억

2000년대 이후 도시가스 보급률이 높아지며 연탄 사용은 급감했고, 연탄배달부라는 직업도 점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일부 복지 단체나 자원봉사자들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연탄을 배달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따뜻한 기억은 아직 우리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탄 연기, 배달부 아저씨가 웃으며 건네던 “조심하세요!” 한 마디, 그리고 작은 연탄 난로 옆에서 가족이 모여 앉던 겨울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이야기들. 연탄배달부의 시간은 그렇게, 검댕 속에서 오늘의 온기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