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하나, 딱지 한 장, 그리고 어릴 적 비밀스러운 쇼핑의 설렘.
문방구 주인의 하루 속에는 단순한 장사가 아니라 골목 아이들의 추억이 가득했습니다.
사라진 작은 가게와, 그 가게를 지키던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 아침 일찍 불 켜진 작은 가게
이른 아침, 동네 문방구의 셔터가 올라가면
학교 가기 전 잠깐 들른 아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사장님! 딱지 얼마예요?”
“오백원이면 두 개 줄게.”
종이 냄새와 플라스틱 향이 뒤섞인 좁은 공간 안에는
볼펜, 지우개, 필통부터 뽑기 기계와 만화책, 간식까지
아이들의 모든 세계가 담겨 있었습니다.
문방구 주인은 가게의 사장이자,
아이들의 친구이자 가끔은 조용한 훈육자였습니다.
등굣길에 숙제를 급히 하거나, 잃어버린 학용품을 급히 사러 오는 아이들에게
엄마 같은 따뜻함으로 다가갔던 존재였죠.
🔹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하루를 함께 파는 일
문방구 주인의 하루는 단순한 판매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오후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줄지어 몰려오고,
가게 안은 작은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뽑기 기계 앞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아이들,
비밀 일기장을 고를 때의 진지한 표정,
몰래 만화책을 읽다가 들켜 놀라는 모습까지—
그 가게는 단지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의 감정이 오가는 무대였습니다.
주인은 물건 하나에도 정을 담아 팔았고,
때로는 “다음에 돈 가져올게요”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그래, 가져오렴” 하며
신용으로도 장사를 이어갔습니다.
작은 신뢰가 돈보다 귀했던 시절,
문방구 주인은 믿음 위에 가게를 꾸려 나갔습니다.
🔹 사라진 풍경, 남겨진 기억
편의점이 생기고, 대형 문구점이 생기고,
전자기기가 아이들의 손에 들리기 시작하면서
골목의 문방구는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수익은 줄고, 아이들의 발길도 점점 끊겼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뽑기 기계는 멈췄고,
진열된 연필은 먼지를 쌓아갔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작은 상점의 불빛은 꺼졌고,
동네 아이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문방구 사장님”의 웃음과 목소리,
사탕 하나 얹어주던 친절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상점에서 시작된 큰 추억이었습니다.
🔹 추억을 파는 마지막 가게
요즘도 가끔 시골 읍내나 오래된 동네를 걷다 보면
간판이 바랜 문방구가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 가게 안에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주인을 만날 수 있죠.
그들은 여전히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고,
누군가 문을 열면 익숙한 말투로 인사합니다.
“뭐 찾으세요? 요즘은 이런 거 잘 안 나가요.”
그 말엔 살짝 서운함이 묻혀 있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는 자부심도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
기억만 남은 공간 속에서
문방구 주인의 하루는 지금도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연필 하나에도 마음을 담았고,
뽑기 한 번에도 꿈을 얹어주던 사람.
사라진 가게지만, 그 안에서 쌓인 추억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 한켠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